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승·오광의 난 (문단 편집) === 봉기 === || [[파일:external/a4.att.hudong.com/01300000316583122899173048345.jpg]] || 기원전 209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진나라 외곽의 대규모 공사에 소집되어 가고 있었는데, 이 중 진승과 오광은 무리를 인솔하는 지위인 둔장(屯長)을 맡고 있었다. 가는 길에 [[장마]]가 내려 강이 불어나 기한을 맞출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진나라의 가혹한 법은 기한을 못 맞추는 정도만으로도 사형이었다. 사람들을 끌고 가고 있던 진나라 병사들은 차라리 이들을 죽이고 시간을 맞추지 못한 죄를 피하려 했고, 진승은 이를 알자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어차피 죽을 거, 한 번 왕이 되어보고 죽는게 낫지 아니한가'라고 외치며 진나라 병사들을 죽이고 같이 길을 가던 사람들을 모아서 관아들을 치며 무기와 군사를 모으기 시작했고 자신들을 장초군이라 부르며 세력을 불려나갔다. 진승과 오광은 거사를 시작하기 전에 점치는 사람에게 일의 성패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물어보았는데, [[점쟁이]]는 "성공하면 큰 공을 세울 수 있지만, 성패는 [[귀신]]에게 물어보라."라고 답하였다. 이에 진승은 '''"이건 귀신의 위신을 빌려 사람들을 복종시키라는 뜻이다."'''라고 해석하여 흰 비단에 붉은 글씨로 '진승왕'(陳勝王)이라고 쓰고는 물고기를 잡아 그 배속에 넣어 두었다가 사람을 보내 사오게 하여 삶아먹도록 시켰다. 수졸들은 물고기 배속에서 '진승왕'이라고 쓴 백서(帛書)를 발견하고 매우 놀랐다. 여기에 더해, 밤에는 몰래 오광을 시켜 수졸들이 숙영하고 있는 부근의 황폐한 사당에 가서 한밤중에 장작불을 피워 놓고 여우 목소리를 흉내내어 외치도록 했다. >'''대흥초, 진승왕''' >'''大興楚, 陳勝王''' >---- > '''"진승이 왕이 되어,''' >'''초나라는 크게 일어날 것이다."''' 이러한 소란에 수졸들은 크게 놀라워했고, 진승을 새삼 다시 주목하게 되었다.[* 참고로 이 말은 2200여년 뒤 시위에서 다시 등장하는데 대신에 이 때는 대흥초를 대초흥으로 바꾸었다. 다만 이 때의 구호는 백지시위와는 제로 코로나 반대 시위라는 것만 빼면 관련없고(몇달 일찍 나왔다.) 베이징 대학교 학생들의 시위였다고 한다.] 오광은 평소에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편이라 인기가 많았다. 이때, 수졸들을 이끄는 진나라의 장위(將尉)가 취한 모습을 본 오광은 일부러 수졸들에게 이 틈에 달아나자고 소리쳤고, 그 말을 듣고 화가 치민 장위는 오광을 흠씬 두들겨 팼다. 그리고 마침내 죽여버리려고 칼을 빼들었을 무렵, 수졸들이 달려들어 막았고 그틈에 오광은 그 칼을 빼았아 장위를 죽여버렸으며, 진승도 남은 한 명의 위(尉)를 살해해버린 다음 수졸들에게 역사에 길이 남을 [[명언]]을 소리쳤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pds/200910/05/89/f0043889_4ac941ca44bd8.jpg|width=100%]]}}} || || {{{#000000 '''인부들을 선동하는 진승''' }}} || > 公等遇雨,皆已失期,失期當斬。藉弟令毋斬,而戍死者固十六七。 >너희들은 비를 만나 모두 기한을 어겼고 기한을 어겼으면 참수를 당할 것이다. 참수를 당하지 않더라도 (수자리) 지키는 사람 열 명 중 예닐곱 명은 죽을 것이다. > >且壯士不死即已,死即舉大名耳,'''[[왕후장상 영유종호|王侯將相寧有種乎]]'''! >또 장사(壯士)란 죽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죽는다면 명성을 드러내야 할 뿐이다. '''[[왕|왕(王)]], [[제후|후(侯)]], [[장군|장(將)]], [[재상|상(相)]]의 [[왕후장상 영유종호|씨가 어찌 따로 있단 말이냐!]]''' >---- >『[[사기(역사책)|사기]](史記)·진섭세가(陳涉世家)』[* 권중달 《자치통감》 1권. pp403][* 이 '''왕후장상 영유종호'''라는 문장은 일반 민중에게, 특히 반란을 일으키는 민중에겐 하나의 캐치프레이즈로 작용했다. [[고려]] [[무신정권]] 때의 [[만적의 난]]에서도 이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한반도로도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모든 수졸들이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원문은 단우(袒右). 고대 중국인들이 뜻을 같이 한다는 표시로 행하는 의식으로 국인이나 중인의 경우는 왼쪽 어깨를, 죄인이나 하층민이 할 때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냈다.] 이구동성으로 호응하였다. > '''"삼가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진승과 오광은 살해된 진나라 도위들의 목을 잘라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